제3부 아! 이현상 - 7. 빨치산 총수 이현상의 죽음(4)

차일혁의 수기

제3부 아! 이현상 - 7. 빨치산 총수 이현상의 죽음(4)

관리자 0 963 2020.08.04 17:15

제3부 아! 이현상


7. 빨치산 총수 이현상의 죽음(4)



오랫동안 논란이 되었던 이현상 사살에 대한 공로다툼은 합동 진상조사단의 조사로도 매듭을 짓지 못하다가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경찰의 공로로 결론지어졌다. 이에 따라 내무부장관과 김장홍 치안국장 김종원 사령관이 태극무공훈장, 김억순 작전과장이 금성충무무공훈장, 김용식 2연대 수색대장은 은성화랑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나는 일선 지휘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금성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서로가 자기의 공이라 내세우는 것을 보면서 나는 가소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공비들에게 습격당해 희생된 1대대장 김동진 경감이 총경으로 추서되어 나는 어떤 훈장을 받은 것보다 기뻤다.

훈장 수여가 끝난 뒤 18대대 시절부터 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김만석 기자가 찾아왔다. 김 기자는 내 얼굴을 응시하며 이야기하였다.

“차 대장은 현지 부대장으로서 일등 공훈을 세우고도 어떤 이유로 공로를 내세우지 않았소? 당신이 가장 높은 상을 받는 게 당연하지 않소. 현지 지휘관이었던 차 총경보다 사령부 작전과장이 더 큰 상을 받는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그리고 현지에 있지도 않고 서울에 올라가 도지사운동이나 하던 김종원이 자기만의 공로인양 으스대는 것을 정말 눈뜨고 볼 수가 없습니다.

“훈장을 받고자 공비토벌을 한 것은 아니요. 또 이현상을 죽였다 해서 금방 이 땅에 평화가 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동족끼리 왜 피를 흘리며 싸웠던가를 밝힐 때 이 땅에 평화가 깃들 겁니다. 새벽부터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겠습니까? 전투에서 죽은 수많은 군경과 빨치산들에게 너희들은 무엇을 위해 목숨을 바쳤느냐고 물었을 때 민주주의를 위해서 혹은 공산주의를 위해서 목숨을 바쳤다고 대답할 자가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이 전쟁은 어쩔 수 없는 동족상잔이 아니겠습니까?

지리산지구의 공비토벌이 거의 끝나갈 무렵 나는 618부대장 김명주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고 그에게 많은 것을 배우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그와 단둘이 있을 때면 부하가 아니라 선생으로 그를 불렀고 그렇게 대했다그는 항상 친형처럼 부하들을 이끌어 대원들의 사기가 높았다.

54년 정초에 618부대는 회문산 지역에서 작전을 펴고 있었다. 하루는 최재범이 부대의 식량을 아껴 술을 빚어서 동네노인들을 대접했다. 김명주는 노인들을 대접하면서 간밤에 꾼 꿈에 대해 해몽을 부탁했다.

“어르신네, 제가 어젯밤에 사람의 배가 갈라져 내장이 터져 나오는 꿈을 꿨는데 길몽입니까? 흉몽입니까?

“실제 그런 일이 있다면 끔찍한 일이겠지만 꿈은 항상 그 반대라 하지 않소. 길몽이오. 큰 전과를 거둘 것이 분명하오.

“이 근처에는 공비들이 전혀 없습니까?

“없소. 그러나 산이 깊어 멧돼지는 많소.

김명주는 정초를 맞아 고생하는 부하들을 배불리 먹이려고 멧돼지 사냥을 나섰다. 실탄이 부족했기 때문에 명사수 몇 명으로 산 중턱을 지키게 하고 함성을 지르며 산을 뒤졌다. 한참동안 산을 뒤졌지만 멧돼지는 보이지 않았다. 지쳐서 그만 산을 내려가는데 동굴이 하나 보였다.

그 동굴은 전남도당의 비밀 아지트였다. 618부대 대원들의 함성소리에 놀란 빨치산들이 달아나고 있는 터였다. 숨어 있던 8명 중 6명은 도망가고 2명은 다리와 뒤꿈치에 각각 부상을 입고 생포되었다. 응급처치로 부상을 치료한 다음 심문한 결과 그들은 순창 출신들이었다.

마을 노인들은 빨치산들이 마을 뒷산에 숨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직접 말하지 못하고 멧돼지가 있다고 했던 것이다김명주는 2명의 공비들을 생포하게 된 경위를 보고하고 그들의 신병을 사령부에 넘기지 말고 618부대에 배속시키자는 뜻을 내비치었다.

“저도 포로가 되어 수용소 생활을 했습니다만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이미 휴전이 조인된 상태여서 생포된 공비들은 전쟁포로 취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공안사범으로 취급되어 더욱 많은 고초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생포된 공비들이 온갖 만행을 저지른 악랄한 자들이라면 공안사법으로 재판에 회부되어 중형에 처해지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이번에 잡힌 공비들은 이 지역 출신들로 마지못해 공비들을 따라다니던 젊은이들인 것 같습니다. 일단 우리 부대에 배속시켰다가 시기를 봐서 부모들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당연한 말씀이오. 그들의 죄라면 마지못해 공비들을 따라다닌 죄밖에 더 있겠소. 김 선생의 뜻대로 하시오. 사령부에서 뭐라 하면 내가 책임을 지겠소.

2명의 공비들을 생포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령부 김장옥 작전계장이 618부대를 찾아와 김명주에게 공비들의 신병을 인계할 것을 요구했다.

“생포한 공비들을 사령부로 데려가 심문할 터이니 신병을 인계하시오.

“안됩니다. 저희 부대가 계속 작전을 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정보와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 부대에 배속시켜 함께 작전을 하도록 연대장님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경사인 618부대장이 사령부 작전계장의 지시를 묵살해 버리자 작전계장은 화가 나 버럭 소리를 질렀다.

“사령부에서 심문하겠다는데 무슨 말이 많아! 어서 데려오지 못해! 사령부를 어떻게 보고 하는 수작이야!

“절대 신병을 인계할 수 없습니다.

김명주도 지지 않고 되받았다.

김장옥 작전계장이 618부대에 와서 공비들의 신병인계 문제를 놓고 다투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나는 618부대로 달려갔다.

“김 계장, 618부대에서 생포한 공비들을 작전을 위해 배속시키겠다는데 안 될 것 있소. 내가 618부대장에게 그렇게 하도록 허락했소. 그리 알고 돌아가시오.

“연대장님, 모든 공비들은 사령부에서 심문하게 되어 있습니다. 협조해 주십시오.

“이 지역의 작전 연대장이 하는 일에 사사건건 이래라 저래라 해서 일이 제대로 되겠소.

작전계장은 내 성질을 건드려 좋을 것이 없다는 걸 잘 알고는 쓴 맛을 다시며 돌아갔다.

상처가 치료된 후 2명의 생포 빨치산은 618부대에 배속되어 일하게 되었다. 소식을 들은 그들의 부모가 달려왔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자식들을 대하자 울음을 터트렸다. 그들은 연신 김명주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김명주는 2명에게 양민증을 발급해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김명주는 학식이 높고 뛰어난 통솔력으로 부대를 지휘했지만 몸이 약했다. 과로를 견디지 못하고 실신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부대에는 한의학에 밝은 방래식이라는 대원이 있었다. 김명주는 번번이 그의 도움으로 기력을 차리곤 했지만, 횟수를 거듭할수록 방래식의 힘으로도 치료가 어려웠다.

나는 그를 전투경찰이 아닌 다른 자리로 보내려고 했지만, 그는 한사코 사양했다. 부하 대원들을 동생들처럼 돌봐온 그로서는 죽기 전에는 그들과 헤어지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와 같은 인재가 공비토벌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공비토벌은 나 같은 사람에게 적격이지 김명주와 같은 유능한 인재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가냘픈 몸으로 간신히 버티던 김명주가 졸도해 급기야는 몇 시간 동안 깨어나지 못했다. 방래식이 치료를 했지만 차도가 없었다나는 그를 하동병원에 입원시켰다.

“연대장님, 저는 곧 죽을 것 같습니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명이 짧았습니다. 그동안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618부대는 최재범에게 맡겨주십시오. 연락병 김명수를 부탁합니다.

“김 선생 무슨 심약한 소리를 하는 거요.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 했지 않소. 어서 기운을 차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큰일을 해주시오. 나 같은 사람은 공비토벌이 제격이지만 김 선생은 우리 민족이 왜 서로 피를 흘리며 싸웠는지를 밝혀야 하오. 당신은 총이 아닌 펜으로 민족의 앞날을 밝혀 주시오.

김명주는 나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또 정신을 잃어버렸다나는 상처뿐인 지리산을 떠나 남원으로 후송되는 김명주의 손을 잡고 우리가 다시 만날 때는 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없는 곳에서 만나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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