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아! 이현상 - 7. 빨치산 총수 이현상의 죽음(3)

차일혁의 수기

제3부 아! 이현상 - 7. 빨치산 총수 이현상의 죽음(3)

관리자 0 1,079 2020.08.04 17:12

제3부 아! 이현상


7. 빨치산 총수 이현상의 죽음(3)



9 23. 화개면장 하병기 씨를 비롯한 많은 화개면민과 2연대 전원이 화개국민학교에서 열린 이현상 사살 기념식이 끝난 뒤, 2연대 수색대원들이 국군 남경사에 끌려가 참모장 김인과 정보참모 양복직에게 조사를 받고 돌아왔다. 남경사에서는 우리 부대 수색대원들에게 작전에서 무슨 총을 몇 발이나 발사하였는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김용식과 대원들은 45명의 빨치산과 조우하여 교전을 벌였으나 몇 명은 도망가고 교전 중 사살당한 이현상의 시체를 발견했다고 그들에게 말했다교전없이 버려져 있던 이현상의 시체를 발견했다는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 이미 서전사에서는 공식 발표를 통해, 2연대 수색대가 9 18일 오전 11시에 이현상을 비롯한 몇 명의 공비들과 교전을 벌여 이현상을 사살했다고 한 뒤였다.

국군 56연대 수색대도 2연대와 비슷한 시기에 거의 같은 지역에서 작전을 했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이 이현상을 사살하고도 시체를 가져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56연대 수색대는 9 17일 밤에 빗점골 부근에서 수 명의 공비들과 교전하여 사살하고 몇 명의 시체는 가져갔으나, 늙은 공비의 시체는 한 대원이 권총이 탐이 나 권총만 가져가고 시체는 그대로 두고 갔다는 것이었다. 이현상의 권총을 증거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현상 사살은 국군의 공로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신빙성이 없었다나이가 들고 권총을 소지한 공비는 필경 거물급이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알 수 있었고, 권총이 탐이 나 이현상의 시체를 그냥 두고 왔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억지였다. 작전 당시는 보름을 앞두고 있던 때라 달이 밝아 전혀 사람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가 아니었다.

귀순공비들에 의하면 이현상은 평소에 두 개의 권총을 소지했다고 한다. 하나는 부대지휘와 전투용으로 허리춤에 차고 다녔고, 또 하나의 작은 소제 권총은 외투 속 옆구리에 차고 있었다. 이현상은 이미 무장해제를 당해 두 개의 권총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국군 측이 이현상의 권총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이현상이 무장해제 당한 후 이현상이 부대 지휘용으로 썼던 권총을 다른 공비가 차지해 사용하다가 국군 측에 입수된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이현상이 무장해제를 당해 거의 감금상태였지만, 소제 권총은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그의 호위병이었던 김진영, 김은석이 확인했었다고 했다. 이현상이 끝까지 간직한 소제 권총은 실탄을 구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무기로서의 의미는 없었다.

경찰과 국군의 공로싸움은 치열했지만 그것을 가려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현상이 사살된 때를 전후하여 생포된 공비들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현상의 최후에 대해 증언할 사람은 없었다. 서전사와 남경사의 공로싸움은 점차 내무부와 국방부의 갈등으로 번져 급기야 내무부, 국방부 합동 진상조사단까지 구성돼 공로를 가리게 되었다.

서전사에서는 이현상의 시체를 확보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이현상의 권총만 확보하면 공로싸움은 서전사의 승리로 끝날 수 있었다그러나 나는 이현상의 권총을 내놓고 싶지 않았다. 일선 지휘관이었던 나를 제쳐두고 서로들 공로싸움을 벌이는 데에 나는 고소를 금치 못했다.

나에게 이현상의 권총을 갖다 준 김용식과 수색대원들은 김종원 사령관과 김억순 작전과장이 다그쳐도 계속해 시치미를 뗐다김억순은 내가 이현상의 권총을 임실출신 국회의원 엄병학에게 선물했다고 김종원 사령관에게 보고해 나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김용식 수색대장과 양희근을 사령관이 직접 취조하며 기합을 주었으나 그들은 일절 입을 다물었다.

수색대원 김용식, 양희근, 이기봉을 사령부에서 다시 호출하였을 때 나는 그들의 출두를 제지시키고 내가 직접 사령부에 출두하여 사령관실을 찾았다. 전투복과 철모를 착용하고 권총에 실탄을 장전한 후 언젠가는 부딪쳐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정면에서 담판을 지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김종원 사령관에게

“물을 일이 있으면 저를 직접 호출하시고 우리 수색대원들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며 당당히 김종원 사령관을 응시했다.

9 18일 당시 사령관께서 전방 지휘소에 계셨다면 좀 더 상황을 소상히 파악하셨을 텐데, 그날 사령관님이 계시지 않아 제가 사령관님을 대신하여 목표지점까지 도착한 연대장들에게 사령관 확인증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때 계셨다면 문제가 이처럼 꼬이지 않았을 겁니다.

이현상 사살 3일 후에 서울에서 내려와 허둥지둥 엄청난 전과를 감당하지 못하는 그를 은근히 비꼬아 말하였다. 나는 이미 각오를 하고 있었다심상치 않은 내 태도에 김종원 사령관은 의외로 부드럽게

“차 연대장을 내가 불신하여 수색대원들을 계속 출두시킨 것이 아니고 수색대원들이 만에 하나라도 속이는 일이 있을 때는 차 연대장 입장이 난처할까봐 하는 생각에서 그들을 대하고 있으니 오해를 푸시오. 직속상관인 내가 차 연대장을 보호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소.

하고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서울 서대문(이기붕씨를 가르킴)에서 특별히 차 연대장을 부탁하셨는데 언제부터 깊은 사이입니까?

하며 말꼬리를 돌렸다나는 이번 이현상 사살전과에 대해서 내 자신이 직접 나서고 싶지 않으며, 현재 바라는 바는 군경이 적당선에서 원만히 이 일을 수습하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얼마 전 공비들에게 무참히 살해된 김동진 경감에 대해 일 계급 승진시켜 명예를 회복시켜 주시면, 이번 이현상 사건의 전과에 대해서는 사령관님께서 모든 것을 알아서 하십시오.

하고 말했다.

서전사 공보계장 문용환에 의해 창경원에서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화개장으로 돌아온 이현상의 시신을, 이현상의 숙부조차 역적이라며 인수를 거부했다. 나는 한동안 시신의 처리에 고심했다. 숙부조차 인수를 거부해 나로서도 난감했다.

3연대장 방득윤 총경은 백운산작전에서 경남도당 작전주임을 사살한 후 시신을 수습하여 정중하게 화장을 해준 일이 있었다. 5연대장 정인주 총경도 나에게 이현상의 시신을 정중히 화장해 주자고 권유했다.

“차 총경, 비록 공비의 괴수로서 국가를 혼란하게 했던 자였지만 그래도 한판 승부를 겨루었던 상대가 아니오. 정중히 장례를 치루어 주는 것이 적장(敵將)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소.

“옳습니다. 비록 공비의 괴수였지만 그도 이제 한 인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공비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마지막 가는 길을 정중히 예의를 갖추어 줍시다.

10 8. 나는 2연대 본부 옆에 있는 섬진강 백사장에서 이현상의 시신을 화장했다. 그의 유품인 염주도 함께 화장했다. 나는 칠불암이 소각되고 주지가 피살되어 갈 곳이 없어 우리 부대에 몸을 의탁하고 있는 스님에게 독경을 하게 했다.

이현상의 시신은 스님의 독경소리와 함께 하얀 재로 변해갔다지리산을 최후의 보루로 생각했던 그는 그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이다.

나는 이현상의 뼈를 내 철모에 넣고 M1소총으로 빻아 섬진강 물에 뿌렸다. 그리고 권총을 꺼내 허공을 향해 3발을 쏘았다.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에 붙이는 나의 조사(弔辭)였다지리산에서 숨져간 수많은 원혼들에게, 초라한 모습으로 삶을 끝낸 이현상에게 보내는 조사였다다시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없기를 기원하는 나의 외침이기도 했다. 한 많은 그의 인생이 한 줌 재가 되어 섬진강을 흘러내렸다.

내가 이현상의 시신을 화장해 준 일이 알려지자, 남경사에서는 내가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화장했다고 비난했다이현상 시신에 박힌 총알까지 확인한다며 야단법석을 떨었던 그들은 내가 이현상 시신을 화장한 것을 증거인멸이라며 트집을 잡았다. 경찰에서도 일부 간부들은 공비괴수를 정중히 예를 갖춰 화장해 주었다고 못마땅해 하기도 했다.

“차 총경! 빨갱이의 시체를 화장해 주었다면서요? 그것도 중을 불러 염불까지 하게하고.

사령부에서 만난 모 과장이 비꼬는 듯이 말을 내뱉었다.

나는 화가 치밀어 큰 소리로 맞받았다.

“당신은 사람이 아니오. 죽은 뒤에도 빨갱이고 좌익이란 말입니까? 이제 지리산의 공비토벌도 거의 다 끝나가고 있소. 나 역시 많은 공비들을 토벌했지만 그들 역시 같은 민족이 아니오. 내 고향 이웃일 수도 있고 내 친척일지도 모르는 것 아니겠소. 그러면 당신은 죽어서까지 공비토벌하러 다니겠소.

이현상이 사살된 후 나는 김동진 대대장을 사살한 이영회부대의 섬멸에 전력을 기울였다. 이영회부대는 구천동작전에서 나에게 커다란 패배를 안겨준 빨치산 부대였다이영회부대는 제5지구당의 해체 이후 부대를 개편하여 의령경찰서 등을 습격하여 빨치산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었다.

11월 하순 함양에 주둔하고 있던 5연대장 정인주 총경이 우리 부대를 찾아왔다.

2연대장님, 이영회부대가 지금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공비토벌인데 하루 속히 끝내고 싶습니다. 우리 부대만으로는 시간이 걸릴 것 같아 2연대 수색대 병력을 빌려주십사 하고 찾아왔습니다.

“저도 하루 빨리 이 지리산을 벗어나고 싶습니다. 수많은 원혼들이 떠도는 지리산에 누군들 머물고 싶겠습니까. 기꺼이 우리 부대 수색대를 보내드리겠습니다.

2연대장님은 공비토벌이 끝나면 무엇을 하시렵니까? 저는 공비토벌만 끝나면 속세를 떠나 깊은 산 속의 절로 들어가 이념의 대결 속에 짓밟힌 무주고혼의 명복을 빌고 내 몸에 스민 피비린내를 씻고 싶습니다.

부처님 얼굴의 정인주 5연대장의 얼굴에는 온갖 연민과 번뇌가 스치는 듯했다나는 33명의 수색대를 불러 5연대로의 배속을 지시했다.

“너희들도 잘 알다시피 이영회와 노영호는 무주 구천동작전에서 나와 18대대에 치욕적인 패배를 안겨준 자들이다. 그때 희생당한 전우들의 원수를 갚으려고 오랫동안 별러왔다. 지금 이영회가 함양 등지에서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너희들이 가서 그를 응징해 전우들의 원수를 갚도록 하라.

2연대 수색대는 11 27일 산도면 사정리 북방 4킬로미터 지점에서 지리산 입산을 기도하던 이영회 부대를 포착하여 이영회를 사살했다2연대 수색대원 양희근은 이영회가 차고 있던 오메가 시계를 증거물로 가지고 돌아왔다. 그 시계는 이영회가 의령경찰서를 습격하여 경찰서장을 죽이고 빼앗아갔던 바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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