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아! 이현상 - 7. 빨치산 총수 이현상의 죽음(2)

차일혁의 수기

제3부 아! 이현상 - 7. 빨치산 총수 이현상의 죽음(2)

관리자 0 1,178 2020.08.04 17:04

제3부 아! 이현상


7. 빨치산 총수 이현상의 죽음(2)



그동안 많은 군경들이 이 자에게 희생당했고, 지리산 골짜기마다 이 자를 잡기 위해 이 잡듯 샅샅이 뒤졌으나 자기를 포획할 자는 아무도 없다는 듯이 신출귀몰하여 군경을 비웃던 이현상의 시체를 보자 감개무량했다공비토벌전에 참전한 후 계속 들어온 이현상은 40대 후반의 중늙은이의 모습이었다. 줄이 선 미제 사지 군복바지와 군용 농구화의 깨끗한 차림의 외양으로 보아 고급간부인 것이 분명했다.

군복 안에는 일기와 한시에 적힌 수첩과 가래(가래나무의 열매, 호두와 비슷하나 먹지 못함)가 있었고, 주머니에서 염주가 나왔다. 그리고 허리춤 깊숙이 소제 권총이 들어 있었다남한 빨치산의 총수였던 이현상이 손놀림을 위해 가래를 지닌 것은 이해가 되지만, 염주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은 나로서는 의외였다.

자신을 위장하기 위한 수단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불교신자였던 나를 상념에 빠지게 했다5년 넘게 빨치산으로 이 산 저 산을 누비며 신출귀몰하다는 소리를 듣던 그였다. 젊은 나이에 박헌영과 함께 공산주의 운동을 이끌며 공산주의를 신봉하던 그에게 종교라는 것이 스며들 틈이 있었던 것일까.

북에 있던 동지들이 대부분 숙청당하고, 외로이 지리산에 남아 투쟁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무상함을 느꼈던 것일까.나 역시 전장을 돌아다니면서 염주를 지니고 있었다. 염주를 굴리면서 상념에 잠기는 것이 오랜 습관이었고,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온갖 번뇌를 염주로 삭이곤 했었다. 토벌대와 공비로 나뉘어 동족끼리 죽고 죽이는 싸움터에서의 악연(惡緣)들이 이 세상만으로 끝

나기를 빌었다.

이현상이 소지하고 있던 권총은 매우 작아서, 호신용으로나 쓸 수 있는 것이었다. 보급이 전혀 없던 빨치산들로서는 그 특수 소제 권총은 실탄을 구할 수 없어서 무기로서는 전혀 가치가 없었다평당원으로 강등되어 있던 그였기에, 가지고 있던 작은 특수 소제 권총은 그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물건인 듯했다.

권총을 이리저리 살피던 나는 그의 손때가 묻은 가래와 권총을 왠지 간직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겨루어보고 싶었던 적이었지만, 그가 사살되고 나니 오랜 친구가 멀리 떠나버린 것처럼 허전해 그와의 인연을 생각하며 간직하고 싶었다.

나는 김용식을 불러 이현상의 유품에 권총이 있었다는 것을 비밀에 붙이도록 하고, 다른 수색대원들에게 권총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설치 않게 했다. 보고를 받고 달려온 서전사 작전과장 김억순에게도 권총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나는 이현상이 우리 수색대의 총에 맞지 않았다면, 누가 그를 죽였을까 하는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그는 평당원으로 강등되어 거의 감금상태에 있다가, 경남도당으로 이송되어 가던 중에 사살된 것이라면, 과연 누가 그를 죽였을까.

근처에서 국군 56연대 수색대도 우리와 함께 작전을 했었는데 그들이 이현상을 사살했다면 이현상의 인상착의를 잘 알고 있을 그들이, 이현상의 시체를 가져가지 않았을 리 만무했다경찰과 이현상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 국군수색대가 이현상을 사살하고도 시체를 그냥 두고 갔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이현상을 생포하거나 사살하면 일 계급 특진을 시킨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특명을 그들이 모를 리 없었다내가 알기로는 국군 56연대 수색대장 안진구는 인민군 소좌출신으로 국군에 귀순해 특별훈련을 받고, 대원 2명과 함께 공비 연락원에게서 입수한 레포를 소지하고, 지리산 이현상 부대에 침투하였다가 정체가 탄로 나서 죽을 뻔했으나, 이현상의 선처로 풀려난 자였다.

안진구 밑에 있는 김석운 부관 역시 전북도당에서 남부군단에 편입되었던 자로, 국군 수색대원들은 2연대 수색대와 마찬가지로 귀순공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현상의 얼굴을 한번쯤은 본 적이 있는 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현상의 사살에 대해 여러 가지로 추측하던 나는 빨치산 내부에서 이현상을 죽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9 18일 이현상 사살 직후인 18 40분경 꽃대봉 기슭에서 본부 수색대 이기봉 조에게 사살된 5명의 공비들은 추측한 바와 같이 김지회 부대 대원으로 판명되었고, 그 중 3명은 이현상을 수행했던 호위대원임이 김은석, 김진영에 의하여 확인되었다.

그들이 사살된 지점, 시각 등을 분석해볼 때 빨치산 토벌로 밤낮을 지내온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몇 가지가 있었다생포, 귀순, 사살되는 공비들의 대부분은 지휘관이 선이 끊어졌다는 공동점이 있는데, 이들이 그 시각에 대담히 자신들을 노출시킨 것은 어쩌면 소속된 도당이나 군당이 그들을 기피하였거나, 이현상을 찾으러 다시 거점으로 돌아오는 2가지 추측이 가능했다.

이기봉 수색대 조장에게 나는 한 명이라도 생포를 하지 못한 점을 힐책하였으나, 그는 너무나도 당당히 접근해 오는 그들의 태도에 생포할 엄두를 낼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한 명이라도 생포하여 진술을 들었다면 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다.

박헌영과 이승엽의 몰락으로 이현상의 제5지구당이 해체되고, 이현상이 평당원으로 강등되어 호위병과 격리되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이현상의 주위에는 일부 자신의 추종자들을 제외하고는 온통 적뿐이었다북한에서도 박헌영을 숙청했는데 그의 심복이었던 이현상을 그냥 둘 수 없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시체가 되어버린 이현상만이 알고 있을 뿐 어느 누구도 시원스럽게 대답해줄 사람은 없었다.

9 20. 김억순 작전과장은 공로를 내세울 양으로 이현상의 시신과 그의 유품을 가지고 경무대로 향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죽은 이현상은 보지 않겠다고 했다. 이승만은 이현상을 생포하여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했던 것이지, 이현상에 대해 달리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현상의 시신이 명동에 소재한 경찰병원에 며칠 안치되어 있는 동안, 그의 보성전문 동창들이 확인하였다, 고향친구며 정치인인 유진산(柳珍山)이 그의 시신을 보러와 ‘현상아, 너도 늙었구나’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갔다이현상의 시신은 창경원에서 공보계장 문용환 경감에 의해 그의 유품과 함께 일반시민들에게 공개되었다.

이현상의 시신은 다시 화개장으로 내려왔다. 충북도지사 운동을 하러 서울에 올라가느라 이현상 사살 당시에는 서전사에 없었던 김종원 사령관이 황급히 남원으로 내려왔다.

9 21. 남원경찰서에 배속되어 있던 2연대 2대대는, 남원경찰서 하영지서 경찰대와 합동작전으로, 남원군당 조직책 오창근의 안내로 뱀사골을 출발하여 장안산으로 이동하던 남원군당 조직책 오창근(당시27)을 사살하고, 5지구당 유격대 부책 문남호(당시27)를 생포하였다.

그는 제5지구당의 해체 후 전북도당으로 배속을 지령 받고, 8월 말경 남원군당으로 이동하여, 전북 장안산에 근거하고 있는 전북도당으로 가는 유일한 비상선을 알고 있는 남원군당 조직책 오창근의 안내로, 9 21일 새벽 3시경 뱀사골을 출발하여 장안산으로 이동하던 중 하영면 갈거리에 침입하여 물품을 약탈하다가 생포된 것이다.

그는 제5지구당 결정서 9호와 10호를 소지하고 있었다. 이로써, 이형련, 김은석, 김진영 등에게서 확인한 제5지구당 해체와 이현상의 평당원으로 강등 등 빨치산 내부의 사정을 보다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서전을 지니고 있었는데 자신의 경력과 자아비판의 내용이 실려 있어서 흥미로웠다. 또한 그는 김종원 서전사 사령관의 국민학교 동창생이어서 화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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