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아! 이현상 - 7. 빨치산 총수 이현상의 죽음(1)

차일혁의 수기

제3부 아! 이현상 - 7. 빨치산 총수 이현상의 죽음(1)

관리자 0 1,039 2020.08.04 16:56

제3부 아! 이현상


7. 빨치산 총수 이현상의 죽음(1)



이형련을 통해 알게 된 정보를 바탕으로 서전사 사령관실에서 작전회의가 열렸다. 나는 심문결과를 김종원 사령관에게 보고하였고, 김억순 작전과장은 자기의 의견을 말하였다. 이날 회의로 새로운 작전명령이 하달되었고, 작전지도를 그렸던 작전주임 한영환은 본 작전이 끝날 때까지 영창에 가두어둘 만큼 보안을 철저히 유지케 했다.

이형련의 정보를 바탕으로 서전사 전방지휘소를 용강에 설치하고, 2연대는 본부를 쌍계사로 전진 배치하였다이현상이 있다고 알려진 빗점골은 쌍계사에서 4킬로미터 남짓한 거리였다. 그곳은 반야봉 남쪽의 1183고지로 향하는 능선으로, 일대는 1천 미터 이상의 험산준령이 이어져 있어, 시계(視界)가 극히 불량하고 가파른 절벽과 계곡으로 작전이 힘든 지역이다.

9 6. 빗점골 부근을 수색하던 618부대는 원범리에서 빨치산 송덕룡부대원 일곱 명이 마을에 나타나 식량을 빼앗아갔다는 정보를 입수했다618부대의 이창기 1소대장은 빨치산을 추격해 1183고지 남방에서, 아침을 먹고 있던 그들을 기습해 김진영과 김은석을 생포하고 총기 2정을 노획하였다.

심문 결과, 김은석과 김진영은 제5지구당이 해체되기 전 7인조 이현상 호위병들이었다. 둘에게서 다시 한 번 제5지구당의 해체와 이현상이 평당원으로 강등 당하여 빗점골에 은신하고 있고, 조만간 경남도당으로 이송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현상은 전남도당과 사이가 나빴기 때문에, 그나마 의지할 수 있는 경남도당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김진영과 김은석을 2연대 수색대에 편입시켰다. 이로써 수색대는 33인이 되었고, 이들 중 빨치산 출신이 아닌 자는 최순경(崔順庚)뿐이었다.

9 6. 5지구당 조직위원회가 빗점골에서 다시 열렸다. 이 회의를 통해 제5지구당은 완전한 해체가 이루어졌다. 그 주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5지구당 당 결정서 제10

1. 9 6일 박영발의 보고로써 제5지구당은 해체한다.

2. 5지구당 요원 및 김지회 부대 대원은 구례, 남원 군당 및 경남도당으로 각각 분산 소속케 한다.

3. 구국출판사를 조직하여 박영발, 송영회가 운영을 담당한다.

4. 5지구당 잔무정리 및 재정비품 일체를 박영발이 인수한다.

5. 송신기, 수신기 설비 및 전원들에 대한 구입 보장을 조병하, 이현상이 책임진다.

6. 5지구당 문서 일체의 보관은 김희준이 책임진다.

7. 김지회 부대는 구례군당의 당적 지도를 받게 하고 그

명칭은 995부대로 개칭한다.

 

이로써 이현상은 완전히 실권을 잃고 반 감금상태에 있다는 것이, 이현상의 호위병이었던 김진영과 김은석의 심문결과로 밝혀졌다9 13. 서전사 작전명령 9호가 하달되었다. 빗점골을 완전 포위하고 수색대를 잠복시켜, 이현상을 생포한다는 작전이었다그러나 작전 개시일은 같은 지역에서 작전을 펴고 있던 국군 56연대로 인하여 5일 연기되었다. 국군 측에서도 전투경찰과 거의 동일한 모종의 정보를 입수한 듯했다.

9 17. 1연대는 남원군 산내면을 경유하여 반성리에 부대를 배치하여 포위망을 형성했다. 3연대와 5연대는 각각 구례와 마천에서 포위망을 구축했다. 2연대 1대대는 주천에 주둔하여 서전사가 있는 남원 외곽의 경비를 맡고, 2대대, 3대대, 618부대는 용강에 집결하여 빗점골 일대에 대한 작전을 개시했다. 나는 수색대로 하여금 용강을 출발하여 범불사 삼정을 경유하여 빗점골 일대의 6개 지점에 매복케 했다.

수색대는 20시경 3~4명으로 보이는 공비들과 조우하여 접전을 벌였으나, 공비들은 순식간에 도주하고 전과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빗점골에 공비들이 은신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확인되었고, 이현상의 은신 가능성도 높아졌다. 이미 호위병도 없이 거의 감금상태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이현상이라지만, 평생을 공산주의 운동에 몸바쳐온 한 인간에 대한 호기심으로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계속 작전상황을 보고받았다.

다음 날인 9 18일 오전 11시경 김용식이 지휘하던 수색대로부터 전과보고가 있었다.

“연대장님 어젯밤에 전투가 있었으나 공비들의 시체를 발견하지 못했었는데, 방금 일대를 수색하다가 늙은 공비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김진영과 김은석에 의하면, 이현상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엎드려 있는 시체를 발견하고 몇 발의 확인 사살을 하긴 했지만, 이현상은 등에 총을 맞고 죽은 것 같습니다. 어제 야간전투 중 그때 총에 맞아 죽은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정확하게 등에서 가슴까지 관통한 것으로 보아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서 총을 맞은 것 같습니다.

이현상의 7인조 호위병이었던 김진영과 김은석이 ‘선생님 죄송합니다’하고 시체를 부둥켜안고 울었다면, 이현상이 틀림없는 것 같았다4시간 후인 15시경 김용식이 지휘하는 수색대 양희근조는 공비들의 아지트를 발견하여 US 99 17, 실탄 5백 발, BAR 1, 실탄 94발을 노획하는 전과를 거두었고, 이기봉 조는 18 40분경 꽃대봉 기슭에서 김지회 부대로 추측되는 공비들과 조우하여 5명을 사살하고 O3 5정을 노획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이현상 외 5명의 공비들의 시체와 노획무기를 쌍계사에 설치된 연대지휘부에 옮겨놓았다김진영, 김은석에 의하여 일차적으로 이현상이 틀림없음을 확인했으나, 이현상과 지면이 있었던 본부 수색대 양희근 외 여러 명의 재확인으로 이현상이 틀림없다고 판단이 내려졌을 때, 나는 허탈감에 사로잡혔다지금 내 앞에 누워 있는 이 자가 바로 이현상이란 말인가!

내가 사령부 전방지휘소에 오늘의 전과와 이현상 사살소식을 종합보고 하였을 때, 사령관은 서울에 출타 중이었다. 전방 지휘소장으로 있던 김억순 작전과장은 너무나 충격이 컸는지 계속하여 몇 번이고 틀림없는 이현상인가를 나에게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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