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아! 이현상 - 5. 서남지구전투경찰대 2연대장으로 부임(3)

차일혁의 수기

제3부 아! 이현상 - 5. 서남지구전투경찰대 2연대장으로 부임(3)

관리자 0 975 2020.08.04 16:40

제3부 아! 이현상


5. 서남지구전투경찰대 2연대장으로 부임(3)



8 12. 나는 김동진 1대대장이 빨치산의 습격을 받고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비보에 접하였다. 본부 수색대장 김용식을 시켜 1대대가 주둔한 용강에 가서 1대대의 상황을 알아보게 하였다. 며칠 전에 얼굴을 보았고 아침에도 전화로 상황보고를 받았기에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김동진 대대장은 공비들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것이 아니라, 작전명령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진출 예정선을 벗어났다가 공비들의 속임수에 걸려 생사(生死)를 알 수 없었다.

김동진 대대장은 전남 전투경찰대 대장시절 백아산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던 지휘관으로, 공비토벌에서 항상 선봉을 지켰다둥근 얼굴에 단단한 체격을 가진 그는 성격이 괄괄하고 거침이 없어, 18대대시절 나의 부하였던 우희갑 경감을 생각나게 했다다음날 떠나라고 해도 듣지 않고 저녁에 출동했다가 공비들의 기습을 받고 장렬하게 전사한 우 경감처럼, 수차례에 걸쳐 그에게도 작전에 신중을 기할 것을 당부하곤 했었다.

그의 불같은 성격이 지리산 공비토벌에서 최선봉에 적합할 것 같아 주공 부대인 우리 부대의 선봉에 배치하긴 했으나, 내심 불안한 감이 없지 않았었다용강에 1대대를 주둔시키고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쌍계사에 주둔하고 있던 618부대가 용강에 진출할 때까지 예정선을 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러나 용강에 진입한 김 대대장은 이미 그곳을 떠나 삼장 가까이 진출해 있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이 지역에는 남경사 예하의 국군 56연대와 11경비대대가 작전하고 있었다남경사 소속의 부대는 2연대 1대대가 오기 전, 이곳에서 공비들의 기습을 받아 국군 소령과 몇 명의 장교들과 사병들이 희생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국군을 기습해 타격을 가한 공비들은 군복을 빼앗아 입고 도주해 버렸다. 뒤늦게 같은 지역에 진출한 경찰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서전사가 설치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투경찰은 같은 지역에서 작전을 펴고 있는 국군에 대해, 독자적인 작전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군인만 만나면 주눅이 들어 제대로 작전을 펴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빨치산들은 이런 점을 이용하여 김동진 대대장과 대대참모들을 유인 납치한 후 사살하였다.

국군 군복으로 변장한 공비들은 정찰나온 1대대원들을 불러, 함부로 국군의 작전지역에 침입했다며 호통을 치고는 경찰의 무장을 해제시켜 버렸다. 순식간에 무장을 해제 당한 그들은 당황해 어쩔 줄 몰랐다공비들은 대담하게 경찰대원 한 명을 시켜 대대장을 데려오게 했다.

다혈질인 김동진 대대장은 부하들이 국군들에게 무장해제를 당하고 수모를 겪고 있다는 보고를 받자, 전후 사정을 가리지 않고 5명의 부하만 데리고 부하들이 무장해제를 당한 곳으로 달려갔다.

공비들은 김동진 대대장과 5명의 경찰이 달려오자, 갑자기 총으로 위협하여 앞장세운 뒤 경찰들을 무장 해제시켜 빼앗은 무기를 가지고 산으로 달아났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1대대 척후대원들은 대대장이 끌려가는 것을 멍청히 바라보기만 하다가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뒤를 쫓았지만 허사였다.

1대대원들은 내가 전에 지휘했던 18대대원들과는 달리 대부분이 나이 많은 철도경찰출신과 훈련과 실전경험이 부족한 대원들이 태반이라 공비들에게 쉽게 속아 넘어갔다.

서전사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경찰이 군의 통제 하에 공비토벌을 해야 했기에 정보교관이 원활해, 공비들에게 쉽게 속을 리가 없었다.그러다가 경찰이 군과는 달리 독자적으로 작전을 하면서 군과의 정보교환이 원활치 못하게 되었고, 서로 간에 경쟁심리가 팽배해 상호협조가 잘 되지 않아 이렇게 결점이 노출되게 된 것이다.

빼앗긴 무기는 고사하고 끌려간 대원들의 생사 여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라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동안 수많은 어려운 전투를 치른 나였지만 이처럼 당황하기는 처음이었다대대장이 공비들에게 끌려가는 것을 멀거니 쳐다보고만 있었던 1대대 척후대원들에게 공비들을 추격하게 할 수는 없었다.

나는 먼저 618부대를 출동시켰다. 그리고 내가 임실에서 데려온 연대 수색대를 투입하여 추격전을 전개하였다공비들은 형제봉 쪽으로 도주하고 있었다618부대와 연대 수색대는 맹렬히 추격하여 형제봉 부근에서 그들과 교전하였다.

618부대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공격하여 들어가 공비들에게 빼앗겼던 무기를 되찾고, 김동진 대대장과 5명의 시신을 찾아왔다. 시신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참혹하게 난자당한 채로 버려져 있었다. 618부대의 과감한 공격에 기세가 꺾인 공비들은 빼앗은 무기를 버리고 도주했다.

공비들을 추격하는데 큰 공을 세운 618부대에 소 두 마리를 사서 그들의 공로를 치하했다함께 수색을 나갔던 2연대 수색대는 빨치산 1명을 생포해 왔다. 그자는 여러 곳에 총상을 입고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물. 물…….

기진맥진해 물을 찾으며 신음소리를 냈다. 지켜보던 대원들은 증오심이 끓어올라 어느 누구도 선뜻 물을 갖다 주려고 하지 않았다나는 그에게 물을 갖다 주었다. 물을 몇 모금 마시고 정신을 차린 그에게 물었다.

“누구의 소행이냐?

그는 전혀 대답이 없었다. 죽을 몸이니 묻지 말고 어서 죽여 달라는 듯 냉소를 띤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였다.

“누구의 짓인지 어서 말을 해.

나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공비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영회 지도부장 소속이다.

이영회라면 바로 2년 전 구천동작전 때 나에게 치욕을 안겨준 자이다행동대장은 뒤에 송관일이라고 밝혀졌다나는 김동진 대대장의 참혹한 시신을 보고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총을 뽑아 생포한 공비를 쏴버렸다.

18대대시절 이후 내 손으로 직접 공비들을 죽이지 않았다. 전투사령부에서도 공비에 대한 즉결처분을 금지한다는 지시가 있었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사실 우리 전투경찰에게는 즉결권이라는 것이 없었다. 혹 즉결사살을 하더라고 보고서에는 도주하는 공비에게 위협사격을 하다가 유탄에 공비가 맞았다고 기록해서 상부에 올렸다. 아니면 죽었다고 판단되어 확인 사살한 것으로 보고하고는 했다. 인도적인 견지에서 볼 때는 비록 적일지라도 죽는 순간까지 치료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전장에서 이러한 인도주의적인 당위론이 반드시 이행되지는 않았다.

휴전협정이 조인된 뒤라 더욱이 공비들을 함부로 사살하지 말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으나, 공비들에게 칼로 난자당한 김동진 대대장의 시신을 보고 나는 끓어오르는 증오심을 이기지 못해 생포한 공비를 내 손으로 죽였다.

나는 김동진 대대장의 옷을 손수 갈아 입혔다연대본부에서 열린 그의 영결식에 참석한 부인의 애절한 통곡소리는 보는 이의 가슴을 메이게 했다.

송관일은 몰라도 이영회부대는 포로를 관대히 대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김동진 대대장 피습사건의 경우를 두고 본다면, 이영회부대가 포로에 대해 잔인하게 온갖 만행을 저지르는 것은, 공비들의 최후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실례였다초기에 이현상 예하의 빨치산 지휘관들이 보여주었던 관대한 포로 처리방식은 그들 나름대로의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군경의 토벌에 시달려온 공비들에게 더 이상 여유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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