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아! 이현상 - 5. 서남지구전투경찰대 2연대장으로 부임(2)

차일혁의 수기

제3부 아! 이현상 - 5. 서남지구전투경찰대 2연대장으로 부임(2)

관리자 0 869 2020.08.04 16:34

제3부 아! 이현상


5. 서남지구전투경찰대 2연대장으로 부임(2)



8 3. 서전사 작전명령 6호가 하달되었다. 이 작전은 화개장을 포위하여 집중 공격한다는 의미에서 화개장 작전이라 명명되었다.화개장은 51년 남부군단이 지리산에서 전력을 가다듬은 곳으로, 빨치산들이 근처의 칠불암에 거점을 두고 화개지서를 여러 번 습격하는 등 최후의 발악을 거듭하고 있었다.

2연대는 주공(主攻)부대로 선정되어, 화개장 지구로 연대본부를 옮겨 공비들의 거점을 공격하게 되었다화개장은 경남과 전남을 잇는 도 경계에 자리하고 하동, 구례, 광양과 맞닿아 지리산과 백운산을 연결하는 중요한 지점으로, 지리산 공비토벌에 있어서 가히 맥()점이라 할 만한 곳이다.

1대대는 용강까지 진출하였다. 나는 김동진 1대대장에게 본 작전이 있기 전에는 진출선을 넘지 않도록 지시했다. 2대대는 남원 경찰서 부대와 함께 수행케 하였다. 이 무렵 남경사 소속의 56연대와 제 11 경비대대는 지리산, 백운산지구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1, 3, 5연대와 2연대 2대대는 저지 부대로 2연대를 지원하게 되었고, 구례, 남원, 함양 경찰서 등은 화개장 주변에서 이중의 포위망을 형성했다이와 함께 석방된 반공포로들로 구성된 618부대(반공포로 석방일로 부대이름 정함) 2연대에 배속되었다. 618부대는 약 200명의 대원들로 이루어진 특수부대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나는 아직 전투력을 알 수 없는 618부대가 배속된 것에 대해 다소 불만이었다. 다른 연대들도 모두 꺼리는 부대를 별도의 유격대로 활용하라는 명령은 어이가 없었다. 618부대의 대원들은 모두 인민군 포로출신으로, 북이나 제3국을 선택하지 않고 남쪽에 남기를 원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인민군 생활을 했기 때문에 전투경찰에 익숙할까 하는 생각에 다른 연대장들은 그 부대 맡기를 꺼려했다. 결국 사령부의 명령에 의해 우리 부대에 배속되었다.

618부대의 배속신고를 받았는데 대장은 인민군 중좌출신의 강우집이고, 부관은 김명주(본명:김창순(金昌順), 전 북한연구소 이사장)이었다. 대원들은 모두가 스무 살 안팎의 어린 나이였다618부대의 실질적인 편성은 김명주에 의해 이루어졌다.                

반공포로를 석방하면서 이승만 정부는 12만 명의 반공포로들 중 약 5만 명을 추려 극비리에 월남전(1차 월남전쟁)에 투입하려는 계획을 세웠었다그래서 먼저 500명만 선발하여 전투경찰대대를 만들려고 했으나, 그중에서 200명만을 고르고 골라 지난날의 인민군시절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대한민국에 충성할 수 있는 자, 공산주의를 싫어하여 그들과 과감히 싸울 수 있는 자, 나이 어린 대학생 등을 선발하여 618부대를 편성하였다.

나는 618부대를 2연대의 별동대로 하동 쌍계사 부근의 석문에 배치하였다며칠 후 618부대 내에서 항명(抗命)사건이 발생하였다. 대원들 모두가 강우집의 지휘에 불만을 품고 대장을 김명주로 바꿔달라는 것이었다.

강우집은 술주정이 심하고 대원들을 인민군 연대장 시절 같이 다루려고 하다가 대원들의 반발을 샀다나는 부대의 특성상 가능한 일이라 생각하고 그들의 의견대로 사령부에 건의하여 김명주를 618부대의 대장으로 바꾸었다.

김명주는 곧 부대를 정비하고 대원들을 훈련시켜 618부대를 서전사내에서 가장 강한 부대로 만들었다김명주는 가냘픈 선비형이다. 그는 부하들을 친동생처럼 따뜻하게 감싸며 이끌었다. 그는 박학다식하여 모르는 것이 없었다. 18대대시절의 김만석 기자처럼 나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점차 그를 부하가 아닌 선생으로 대하게 되었다.

그는 정치, 경제, 문화, 역사 등 어느 한 방면에도 막힘이 없을 정도로 박식하였고, 영어, 중국어뿐만 아니라 러시아어까지 능통하였다특히 볼셰비키사()에 대해서는 나름대로의 일가견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중국 공산당 내의 지도자들에 대해서도 상세히 알고 있었고, 중국 공산당 군대의 성격과 부대 운영방식에 대해서도 훤했다. 중국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그는 너무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지라 한때 중국군 장교로 있었던 내가 놀랄 지경이었다. 나는 그와 대화를 나눌 때마다 그의 인생 경력이 다채롭고 흥미진진한 듯 하여 밝히기를 거듭 요구했지만,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다며 웃고 마는 신비스런 인물이었다.

그는 특히 한문에 정통해 주변마을의 노인들을 놀라게 하였다김명주는 서시교(西施橋)라는 다리 이름이 이상해, 마루에 좌정해 있던 노인에게 그 유래를 물었다.

“서시(西施)는 옛날 중국의 미인인데 어찌해서 다리 이름을 서시교라 붙였습니까?

“당신같은 군인이 중국고사에 나오는 서시만 알았지, 우리나라의 야사는 알지 못하는 모양이군요.

“이 다리가 조선시대 숙종 때의 서시에 관한 고사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김명주는 숙종 때 있었던 서시에 관한 고사(故事)를 이야기했다.

김명주가 숙종 때의 서시에 관련된 고사를 줄줄 읊자 노인은 크게 놀라며 김명주를 다르게 대했다.

“그 고사와 서시교라는 다리 이름이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여기가 그 서시에 관한 시구로 장원급제했던 어른의 고향이오. 그분이 고향으로 돌아와 그 이야기를 동네사람들에게 한 뒤로 동네사람들은 마을 어귀의 다리를 서시교라 하였소. 그런데 젊은 군인양반이 한문에 그리 능하시오. 내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 우를 범했구려.

몇 시간 동안 노인과 김명주는 시를 주고받았다. 노인은 김명주의 한문 실력을 당하지 못했다. 김명주의 문장에 놀란 마을 노인은 618부대원 앞에서 김명주의 뛰어난 한문 실력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아끼지 않았다. 

이 소문은 연대장인 나에게까지 알려졌다숙종이 성문지기의 숨은 실력을 우연한 기회에 발견하게 되었던 것처럼, 비록 경위 대접을 받고는 있으나 정식 계급이 경사인 김명주를 총경계급의 연대장인 나도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이후 김명주가 한문에 능하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전주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와 그에게 한문을 배우고자 하였다. 몇 사람이 멀리서 그를 찾아왔지만 그를 능가할 정도의 한문 실력을 가진 사람이 드물었다.

서전사의 창설 이후 다시 우리 부대에 취재를 맡은 김만석 기자는 김명주와 장시간 대화를 나눈 후 소문을 들었다며, 박학다식한 김명주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명주 군이야말로 이 땅에 둘도 없는 수재임에 틀림이 없소. 그런 아까운 인재가 총을 잡고 있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나 같은 지방신문 기자보다 한 차원 높은 합동통신(合同通信) 전주지사장 자리에 그를 추천하고 싶은데 대장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물론이오. 그와 같은 인재가 이곳에서 썩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소.

김 기자가 잘 알아보고 좋은 자리가 있으면 김 선생을 이곳에서 하루 빨리 내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연대장님은 정말 인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나는 그가 전투경찰보다는 학자가 더 어울릴 것 같아 618부대를 그만두고 신문기자나 다른 것을 해보라고 권유도 했었지만, 그는 약한 몸에도 불구하고 618부대를 떠나려 하지 않았다.

618부대는 부대장 김명주와 작전참모 최재점의 지휘통솔로 일치단결하여 절대 민폐 끼치는 일이 없었고, 어떤 부대에도 지지 않는 강한 부대로 발전했다. 거칠기로 유명한 귀순공비들로 구성된 보아라 부대도 618부대를 당하지 못했다.

한 번은 보아라 부대가 먼저 618부대에게 시비를 걸어온 적이 있었다서전사의 병력 중에서도 무기가 가장 열악했던 618부대가 부대기를 앞세우고 군가를 부르며 남원의 서전사 사령부에 들어가 무기교환을 하고 있었다. 마침 사령부에 들어와 있던 문순묵의 보아라 부대와 부딪쳤다.

신상묵 경무관이 지전사 사령관시절, 귀순공비들로 구성되었던 보아라 부대는 거칠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은 공비토벌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었고, 이에 따라 그들에 대한 신임과 지원도 대단했기 때문에 다른 전투경찰부대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게다가 618부대는 반공포로출신이고, 문순묵의 보아라 부대는 귀순공비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서로 미묘한 경쟁심이 작용하고 있었다. 618부대는 배속되자마자 용맹을 떨치고 있었기 때문에, 보아라 부대는 내심 질투를 하고 있었다.

먼저 보아라 부대가 시비를 걸어와서 두 부대 사이에 육탄전이 벌어졌다그런데 보아라 부대원들이 618부대에 얻어터졌다힘에 밀린 보아라 부대가 총을 쏘는 사태까지 이르게 되어 서전사 사령부를 들썩거리게 했다.

대원들 모두가 운동선수 출신이고, 나이가 어렸던 618부대도 참지 못하고 보아라 부대를 향해 총을 발사해 버렸다. 시비를 걸었던 보아라 부대는 618부대원들이 거칠게 나오자 기가 죽어버렸다사령부에 있었던 김종원 사령관의 귀에 이 일이 들어가 심한 질책이 있었으나, 이후부터 어느 부대도 618부대를 얕잡아보지 못했다서전사에서 가장 강한 전투력을 가진 618부대와 보아라 부대는 묘한 라이벌로 부상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휴전이 성립되었지만, 지리산만은 총성이 멎지 않고 있는 최후의 결전장이었다. 지리산의 평정 없이는 남한의 평화가 없고, 이현상의 생포 없이는 지리산의 평정이 불가능하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특별담화와 이현상을 직접 만날 용의가 있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담화가 있었지만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서전사가 창설된 이후 7 20일까지 두 달이 넘도록 특별한 작전이 없었던 것은, 그동안 새로이 부대원들을 훈련시키는데 치중하였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루어질 휴전회담이기에 지리산 공비들의 본격적인 투항이나 협상을 기다리는 측면도 있어, 계속하여 대규모로 삐라를 살포하고 공비들의 동태를 주시하였다. 그러나 공비들은 최후의 일전을 각오한 듯 경찰의 선무공작을 비웃는 듯한 만행을 일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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