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합동통신사 편집국장 박석기

차일혁을 기억하는 사람들

전 합동통신사 편집국장 박석기

관리자 0 603 2020.08.03 16:36

차일혁 대장님 영전에 서서

 

화랑소대원 박석기 합장

18전투경찰대 특공중대원

전 합동통신사 편집국장

1996 8 9

 

지금 우리는 45년 전의 8월의 대장님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손으로 가꾸고 달구어서 서남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지방어 집단으로 키우신 제18전투경찰대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 군대가 버리고 간 단발 소총, 인민군과 빨치산으로부터 빼앗은 화기, 그리고 대원의 목숨 값보다 단가가 비싸다는 몇 자루의 M1 소총. 잡동사니 화기류 못지않게 이북 실향민, 우리말이 서툰 재일교포 학도병에다가 남한 각지의 지원병이 뒤섞인 부대원의 구성도 프랑스 외인부대만큼이나 다양하여 통제하기 어려운 집단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오합지졸도 테 굵은 안경을 권위의 상징처럼 철모 밑에 눌러 쓰시고 당신이 진두에 서면 남루한 겉모습과는 생판 다른 정예 부대로 둔갑하는 것이었습니다. 칠보발전소 수복, 선운사 전투, 절대 열세의 장계 전투 등에서 우리는 차일혁 부대의 명성을 전국에 떨치지 않았습니까?

대장님, 대장님은 쫓는 자와 쫓기는 자가 수시로 바뀌는 치열한 싸움터에서 머리를 먼저 쓰고 더 빨리 뛰는 기초훈련을 우리들에게 철저히 다져 놓으셨습니다.

당신의 좌우명이요 또한 부대 훈()이기도 한 생필사(生必死)하고 사필생(死必生)하는 정신을 체득하고 열심히 뛴 우리들은 이렇게 살아남아서 반세기가 남도록 가슴속에 새겨진 당신의 가르침을 회고하고 있습니다. 차일혁 부대에서 걸으며 생각하는 지혜를 터득한 젊은이들의 행동 규범은 전화(戰禍)를 딛고 일어선 사회 구석구석에서 적지 않은 힘이 되었으리라고 믿습니다.

차 대장님의 부하들은 죽이는 법을 먼저 가르친 여느 토벌대와는 달랐습니다. 죽이지 않고 싸움에 이기는 길을 가르치고 실천하는 데 대장님은 이 시대를 앞장서 가셨습니다.

맞수가 된 훌륭한 적을 굴복시켜 끌어안는 데 성공하셨고, 적이 스스로 무너지는 부전승의 기회를 포착할 때까지 기다리며 적과 공존하는 방법도 우리는 배웠습니다. 알고 보면 적도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이었으니까요.

어느 외국 학자는 차일혁 부대의 대 게릴라 전술을 초기 월남전에 투입된 미국 지휘부가 미리 알았더라면 그토록 처참한 패망은 없었으리라는 진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주 구천동전투의 결과 분석을 거울삼아 다듬어 놓으신 소단위 유격전의 개념입니다.

사기가 높고 충분한 인센티브가 보장된 타격대의 활용이 적의 심장부를 일격에 무력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지요. 보기에도 거창한 대부대를 동원하는 데 따르는 부담을 크게 줄이고 대민 선무공작을 확대하면 일거양득, 전술목표와 전략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었으니까요. 차일혁 전법은 투자 대비 효율을 중시하는 기업경영의 선구적인 모델이기도 한 것이었습니다.

대장님이 지금도 저희들의 화제에 오르는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생명에 대한 깊은 사랑이며 적과 동지를 초월하여 사람을 아끼는 정신인 것 같습니다.

절대 고독의 정상에서 당신은 기회 있을 때마다 민주적인 절차로 뽑은 리더를 테스트하셨습니다. 윗사람이 지휘능력을 인정한 사람을 윗사람이 뽑아 놓는 데 만족하지 않으시고 그 사람과 생사고락을 같이 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는지 전 대원 앞에서 확인하고 지휘를 맡기셨으니까요.

‘인기투표나 다름없는 절차’를 통하여 진급 후보에 오른 사람들에게 큰 막대기로 연병장 맨바닥에다가 전 부대원이 보는 앞에서 자기 이름을 쓰게 하셨지요. 자기 이름을 걸고 대원들 앞에서 맹세하듯이 이름 석 자를 크게 써 놓으면 대장님의 미소 하나로 진급 의식은 끝났습니다.

지금도 해맑은 미소를 머금고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상에 신경을 쓰시던 대장님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다른 부대장들이 애용한 색안경을 우리 대장님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지요. 투명한 안경 너머로 우리를 꿰뚫어 보시며 언제나 쉬운 말로 기억에 와 박히는 화두와도 같은 말씀을 주시곤 했습니다.

어느덧 제일 나이가 어린 대장님의 부하들도 이제는 육십이 넘은 노인이 되었는데 이렇게 대장님 영전에 서면 다시 옛날로 돌아갑니다.

조국과 자유와 젊음을 사랑하는 방법을 조용히 가르치신 차 대장님, 어느 날 꿈에라도 나타나셔서 우리들이 풀어놓은 화두를 골고루 살피시고 채점해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통렬한 조크로 또 한 번 저희를 웃겨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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