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팔이 부대장 최태환

차일혁을 기억하는 사람들

외팔이 부대장 최태환

관리자 0 724 2020.08.03 16:34

차일혁 경무관을 추모하며

 

최 태 환

1989 7 26

 

내가 차일혁 경무관을 직접 만난 것은 그가 공주경찰서장으로 재직하던 1957년이었다. 당시 나는 전향을 거부하고 있던 빨치산 출신의 재소자였다. 2주일에 한 번씩 순화교육을 나왔던 그에게 나는 그때까지 숨기고 있었던 내 신분을 밝혔다.

나는 외팔이 부대장으로 군경토벌대를 놀라게 한 외팔이였지만, 차일혁 경무관 역시 전쟁 초기에 인민군 치안대에 의해 총상을 입고 왼팔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각기 다른 방법으로 조국을 염려했지만 결국은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외팔이였던 것이다.

1951년 칠보발전소 공방전 때 서신을 교환한 이후 6년 만에 직접 상면을 했던 것이다. 그는 나와는 대척(對蹠)적인 입장에 있었고 이념적으로 보면 나의 적이나 다름 없었다. 그러나 그와 진지하게 토론을 하면서 그의 애국심과 인품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새벽부터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알겠습니까? 전투에서 죽은 수많은 군경과 빨치산들에게 물었을 때 민주주의를 위해서, 혹은 공산주의를 위해서 목숨을 바쳤다고 대답할 자가 몇이나 되겠습니까?”라고 한 그의 말을 충분히 이해한다.

나는 40년 만에 전북도당의 탱크병단장이었던 황의지와 감격적인 해후를 했다. 전북도당 사령부에서 밤새워 조국의 미래를 이야기하던 그때의 황의지와, 빨치산 토벌을 하며 민족의 비극을 고민하던 차일혁 경무관이 나에게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는 것으로 느껴진다. 낙동강 전선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간 인민군과 백마고지 전투에서 쓰러진 국군이 결국은 하나였듯이, 그들에게 있어서 조국은 하나였던 것이다.

우리는 상이한 처지에서 분단 비극의 가슴앓이를 하면서도, 두 쪽으로 갈라진 조국을 하나로 만들기 위한 일에 젊음을 바치겠다는 뜻에는 차이가 없었다.

이는 51년 초 우리가 교환한 정치협상 회담 메시지가 잘 증명하고 있다. 그 회담은 비록 성사되지 못했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차 대장의 진중수기를 대하면서 차 대장이, 우국충정과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서 얼마나 괴로워 했던가의 단면을 느끼게 된다.

그의 진중수기에는 빨치산과의 교전에서 있었던 전과뿐만 아니라, 빨치산의 생성과 소멸에 관한 나름대로의 분석이 있다. 또한 토벌대 기록으로는 드물게 패전의 기록도 빠뜨리지 않고 있어, 역사적 기록물로서도 상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새삼 차 대장의 성실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게 한다.

그 때 있었던 은원(恩怨)일랑, 많은 세월이 흐른 오늘에도 변함없이 흐르고 있는 섬진강 물에 흘려보내고,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그리고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게 지하에서나마 지켜보길 바란다.

이승에서 있었던 인연이 영겁의 인연인 줄 알고 다시금 차 대장의 가호(加護)를 비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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