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 연구원 남정옥 박사

차일혁을 기억하는 사람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 연구원 남정옥 박사

관리자 0 708 2020.08.03 16:26

진중기록은 6.25 전쟁의 난중일기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 문학박사

2014 8 4

 

 

6·25전쟁은 5천년 유구한 한민족 역사에서 최대의 사건이자 비극이었다. 전쟁은 국제적으로는 남북한 당사국을 포함하여 25개국이 참전한 세계대전의 성격을 띠었고, 국내적으로는 어린아이와 노인만 빼고 군인, 경찰, 여군, 학도병, 소년병, 노무자, 청년단체, 유격대 등이 펼치는 총력전이었다. 그렇게 해서 치른 전쟁이 물경 3 1개월 4, 1129일의 전쟁이었다. 피를 튀기는 쫓고 쫓기는 싸움이 하루가 멀다 하고 금수강산 한반도에서 벌어졌다. 그것이 비극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 과정에서 생떼같이 젊은 남북한 군인 약 130만명이 김일성이 일으킨 전쟁에 무수히 죽거나 불구자가 됐다. 그러기에 지리산의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서 피를 흘리며 스러져 간 군경과 빨치산은 현재 지리산의 울창한 수목(樹木)만큼 많지 않았을까! 이것을 비극이라 하지 않고 무엇을 또 비극이라 이름 부르겠는가!

 

더욱더 안타까운 것은 휴전선에서의 군인들 간의 정규전은 1953 7 27일 정전협정 체결로 중지됐으나, 지리산에서 빨치산과 경찰과의 비정규전은 정전협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됐다. 그중에서도 민족의 영산이라 할 지리산에서의 생사를 넘나드는 양보 없는 싸움은 지켜보는 이를 오히려 안타깝게 했다. 지리산에서 총성이 맺은 것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뒤로부터 한참 뒤인 1955년이었다. 빨치산이 사라진 지리산에 이제 평화가 깃들었으니 들어와도 좋다는 전투경찰들이 세운 푯말이 그 증표(證票)였다. 그토록 대한민국 후방지역을 어지럽히며 인근 주민은 물론이고 이를 토벌하는 군경들에게 공포를 넘어 경외심까지 갖게 했던 ‘남부군총사령관’ 이현상(李鉉相)이 차일혁 총경이 지휘하는 서남지구전투경찰대 제2연대 수색대에 의해 사살되고서야 그 끝을 보게 됐다. 이로써 김일성이 남침승인 과정에서 소련의 스탈린에게 남침만 하면 남한지역 내 20만명에 달하는 남로당원(南勞黨員)의 봉기로 승리할 수 있다며 호언장담했던 후방지역에서의 게릴라전은 물거품이 됐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은 1948년 여순 10·19사건과 6·25전쟁 그리고 정전협정 체결 이후에도 계속되었던 전북 등 삼남지대와 지리산 일대를 주 무대로 삼아 군경과 대치하며 후방지역을 불안에 떨게 했던 빨치산들을 완전히 토벌하고, 후방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되찾게 됐다. 이는 빨치산 토벌대장으로 수많은 전공을 세우며 명성을 떨쳤던 차일혁과 전투경찰 그리고 군의 공로였다. 그중에서 으뜸은 단연 빨치산의 총수 이현상을 사살함으로써 이후 빨치산들이 구심점을 잃고 조직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게 한 차일혁이었다.

 

차일혁(車一赫, 1920-1958) 경무관은 전북일대와 지리산에 평화를 가져온 6·25전쟁영웅이자 대한민국 경찰의 상징적인 존재로 추앙받고 있다. 중국에서의 오랜 항일무장투쟁, 광복 후 악질 일본형사 처단, 호국군 대대장과 청년방위대 정보처장, 7사단 구국의용대장, 18전투경찰대대장을 통해 그는 보통사람과는 다른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았다. 특히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 지리산과 관내 빨치산으로부터 전라북도의 안정을 책임지는 제18경찰대대 대대장과 철주부대장, 무주서장과 임실서장, 그리고 서남지구전투경찰대 제2연대장으로서 수많은 공비토벌작전을 통해 다대한 전공을 세웠다. 그 과정에서 남한 내 유일했던 칠보발전소를 지켜내 호남과 충남지방의 안정적인 전기 공급을 가능케 했고, 화엄사를 비롯한 쌍계사와 천은사 등 천년고찰을 보호했고, 정읍작전·고창작전·가마골작전·지리산 작전을 통해 전북일대와 지리산의 안정과 치안에 기여했다. 남부군총사령관 이현상의 사살은 대한민국 후방지역을 앞당겨 안정시킨 결과를 가져왔다. 국가 1급 시설을 지켜내고, 이현상을 사살하여 후방전투를 종결하고, 국보 문화재들을 수호한 그의 전공은 태극무공훈장을 수차례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차일혁은 계급이나 명예를 탐하지 않았다. 오로지 조국에 대한 의무, 부하에 대한 사랑, 본인에게 주어진 철저한 책임완수에 매진할 뿐이었다. 차일혁이 존경받고 높이 평가받은 또 하나의 이유다. 이제는 후손들이 그의 업적을 발굴하여 재평가할 몫만 남아 있다.    

 

차일혁 경찰대대의 상징은 포효하는 맹호(猛虎)였다. 차일혁은 맹호처럼 범상치 않은 카리스마, 뛰어난 작전지휘능력, 강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온유함과 냉철함이 고루 섞인 독특한 지휘방식, 불의와 타협치 않은 절대 소신, 약자를 보호하고 감싸주려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유엔군이 부처님의 미소를 배우기 위해 왔다”는 장자사상(莊子思想)에서나 느낄 수 있는 은유적 유머 감각,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적에 대해서도 감히 용서할 수 있는 관대함과 포용력, ()하면서 더 없이 힘차게 느껴지는 강한 필법(筆法)과 문장력, 당대 뛰어난 소리꾼을 능가할 정도의 창() 실력 등은 가히 불가사의한 초인(超人)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그러면서 속세의 범인(凡人)들이 하는 것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속세의 범인처럼 차일혁은 부하들을 위해 토벌작전 시 절대 개고기를 먹지 않았고, 노루를 죽이지 않았고, 사찰(寺刹)을 불태우지 않았다. 부하의 희생을 염려하며 성공적인 작전을 위한 지휘관의 정성이 올곧이 담긴 마음가짐의 발로였다. 차일혁의 위대함과 나약한 인간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또 하나의 전쟁-차일혁의 수기》는 차일혁의 진중기록을 바탕으로 쓰여 졌다. 차일혁은 매 작전 때마다 임진왜란(壬辰倭亂時) 때 이순신 장군처럼 자신의 작전에 대한 내용을 상세히 기록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차일혁의 ‘6·25전쟁 난중일기(亂中日記)’이다. 그는 작전을 기록함에 있어 성공한 작전뿐만 아니라 본인에게 자칫 누()가 될 수 있는 실패한 작전에 대해서도 철저히 기록했다. 나아가 작전에 대한 평가를 덧붙여, 왜 작전에 실패했고,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알려주었다. 그러기에 작전 중임에도 《전북일보》에서는 차일혁의 진중기록을 연재하며 소중한 역사자료로 남겼다. 따라서 그의 진중기록은 6·25전쟁의 공비토벌작전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사료로서의 객관성과 검증을 이미 거쳤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의 특징은 차일혁의 육필(肉筆)인 진중기록을 토대로, 아들 차길진(車吉辰, 차일혁기념사업회 회장) 10년이 넘게 관련자들의 증언과 현장 답사를 통해 작성한 ‘아버지, 차일혁 경무관의 유고(遺稿)’라는 점이다. 특히 차길진은 여전히 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보완하기 위해 탐방의 행보를 멈추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진중기록 또는 유고집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차길진은 진중기록에서 실패한 전투도 포함하여 책의 객관성뿐만 아니라 질적 완성도를 높임으로써 사료로서의 가치를 더욱 인정받게 하였다. 여기에 딱딱한 군사적 사실(史實)을 훼손시키지 않은 범위에서 문학적 용어로 순화시킴으로써 젊은 학생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따라서 이 책은 6·25전쟁 연구자 및 학자, 그리고 전후세대들에게 전사(戰史)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애국자이면서 전쟁영웅 차일혁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통해 조직사회에서 창조적 리더의 역할, 치열한 생존경쟁 시대 인간의 의리와 도리, 유한(有限)한 인간 삶을 일깨워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배울 수 있는 인생지침서로서의 가치도 지니고 있다 하겠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전사를 연구하는 학자 및 학도(學徒)는 물론이거니와 일반시민과 학생들도 우리 민족이 몸소 겪은 60여 년 전 격동의 뼈아픈 시대를 다소나마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감히 일독(一讀)을 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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