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주제 : 차일혁의 해방 후 건국기와 6.25전쟁 후의 활동(1945~1950, 1954~1956) 2-9

차일혁선생 학술회의

제2주제 : 차일혁의 해방 후 건국기와 6.25전쟁 후의 활동(1945~1950, 1954~1956) 2-9

관리자 0 570 2020.07.31 15:49

. 맺음말

 

차일혁의 민족정신과 민족의 자유를 향한 활동은 그가 활동한 시대를 관통해 일관되게 나타난다. 그 일관성은 차일혁을 돋보이게 한다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해 죽음에 까지 이르게 한 사이가 시치로는 반드시 민족정기로 처단해야 했다. 광복 후에도 우리의 독립을 행동으로 방해하고 있는 사이가를 차일혁과 일행의 힘으로 처단했다. 그 여파로 조선총독부 고위 관료가 일본으로 퇴각하려 했다.


미군정 기획과장이란 정책 핵심요직에 앉아 있는 전 경기도 경찰부장 하라다도 그 자리에서 끌어내려야 했다. 하라다는 저격을 받고 치료를 받은 후 부랴부랴 일본으로 귀국해야만 했다상해에서 독립투사들을 잡아 국내로 압송시키던 악귀같은 쓰보이도 민족정기로 처단해야 했다. 쓰보이를 저격해 그도 결국 일본으로 퇴각했다.


차일혁을 포함한 이들의 의거로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핵심 잔존세력인 경찰핵심부가 처단되거나 일본으로 귀국했다. 나머지 세력도 일본으로 결국 우리나라를 포기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지만 이들이 처단되거나 저격되지 않았으면 조선총독부 관료들은 우리나라에 붙어 있을 때까지 붙어 있으며 독립을 방해하였을 것이다. 이들은 미군정의 고문이나 주요 직책에 있었으므로 충분히 개연성이 있을 것이다이런 의미에서 차일혁의 거사는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차후 이에 대한 심도 있는 역사적 평가를 기대해 본다.


건국과정에서 정규군을 떠받치는 예비군 격인 호국군과 청년방위대의 입대도 높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차일혁은 이때 같이 했던 부하들과 유격대 활동을 하며 우리나라를 지켰으며, 이들과 같이 경찰에 입문했다. 호국군과 청년방위대의 대원들은 6.25전쟁에 정규군 또는 청년방위대 등의 자격으로 전쟁에 참여해 정규전이아 대빨치산전에서 혁혁한 활약을 펼쳤다. 이들은 공산주의에 맞서 건국의 밀알이 되었으며 6.25전쟁에서 우리나라를 지키는 작지만 큰 역할을 묵묵히 해낸 영울들 이었다. 차일혁도 묵묵히 이들과 같이 우리나라를 지켜낸 영웅이었던 것이다.

  

전후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비견되는 충주비료공장의 착공을 경찰서장으로서 연착륙시켰으며, 깡패와 각종 사건으로 얼룩진 공사판에 엄정한 질서를 세워 정상적으로 진행이 되도록 경찰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였다. 그 공사와 관련된 깡패나 사건사고 등 어떠한 비리에도 연루되지 않는 청렴함도 보였다. 화교들을 돌봄으로써 사해동포주의를 실현하였다. 사회적 절대 약자인 화교들에 대한 온정은 그 시절에는 베풀기 힘든 호의였다. 전쟁고아를 돌보아 직업교육을 시킨 것도 동일한 맥락으로 보여진다.

 

빨치산을 우리나라 국민으로 되돌려 놓듯이 사회적 절대 약자에 대한 진정한 휴머니즘을 구현한 행위와 이들도 우리나라 사회에 동화되도록 통합의 정신을 구현한 행동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20149월의 호국인물로 선정되며 그 호국정신의 근저에는 어떤 정신이 숨겨져 있는지 조명해 보았다이번 세미나가 대한민국과 한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헌신을 한 숨겨진 인물들에 대한 연구의 기폭제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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